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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

STATUS DISPLAY

보이지 않는 집진기의 상태 확인

앞선 글에서 iVAC 시스템을 이용해 장비와 집진기, 블라스트 게이트를 서로 연동하는 계획에 대해 이야기했다.
장비를 켜면 해당 배관의 게이트가 열리고, 사용하지 않는 게이트는 닫히며, 지하에 있는 집진기가 자동으로 가동되는 구조.
지금껏 준비한 것도, 앞으로 준비할 것도 잔뜩인데 글자 몇 개로 정리해 놓고 보니 상당히 간단해 보이네.

어쨌든 아뜰리에 썸머의 집진기는 실제 목공 작업을 하게 될 공간과 분리된 별도의 지하 창고에 설치될 예정이다.
커다랗고 시끄러운 집진기를 작업실 밖으로 밀어내고, 1층에서는 집진 배관만 보이도록 구성한 것은 기능적으로나 심미적으로 꽤 마음에 드는 선택.

문제는 집진기가 눈에 보이지 않는다는 것.
으잉?? 눈에 안 보이게 하려고 미리 계획해서 기껏 내려놓고, 그게 왜 또 문제인가.

조용해서 좋은 것은 물론이고 흉물스러운 집진기가 보이지 않는 것은 심미적으로나 공간적으로 꽤 이점이 많지만, 현재의 집진 상태가 한눈에 확인되지 않는다는 점은 자칫 문제가 될 수 있다.
iVAC 시스템이 제대로 동작한다면 굳이 확인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자동화 시스템일수록 뭔가 시스템적인 오류로 아다리가 안 맞아서 켜지고 꺼지는 데에 오류가 발생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는 없다.

장비를 켰는데 집진기가 돌아가지 않는 상황.
혹은 반대로 장비를 모두 껐는데 집진기만 계속 돌아가는 상황.
집진기가 바로 옆에 있다면 소리나 진동만으로도 금방 알아차리겠지만 한 층 아래 별도의 공간에 있으니 그게 또 문제가 된다.
애써 구축해 둔 자동화가 오히려 문제를 보이지 않게 감춰 더 큰 문제를 만들어 버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집진 시스템의 실제 작동 상태를 직관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별도의 대시보드(Dashboard)를 만들어 보기로 계획했다.

대시보드 제작을 위한 Raspberry Pi 5 와 각종 센서, 부품들

처음에는 단순한 표시등 하나면 충분하다고 생각을 했었다.
방송국 녹음실 같은 데에서 흔히 보이는 ‘ON AIR’ 사인등을 하나 달아서 집진기가 켜지면 ON AIR 표시가 켜지고 집진기가 꺼지면 표시등도 꺼지는..
집진기와 ON AIR가 의미상으로도 뭔가 잘 어울리는 것 같아서 좋은 아이디어라고 생각하고 꽤 고민을 진행시켰었다.
사실 기능적으로는 그것만으로도 충분한 건 맞다.
하지만 어차피 아뜰리에 벽 한쪽에 항상 설치되어 있을 장치라면 집진기를 사용하지 않는 대부분의 시간에도 나름의 역할을 부여할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그래서 결정한 것이 라즈베리파이 5(Raspberry Pi 5)와 작은 와이드 디스플레이를 이용한 대시보드.

라즈베리파이(Raspberry Pi)는 손바닥보다 작은 싱글보드 컴퓨터(Single-Board Computer)로, 일반적인 PC처럼 운영체제를 설치해 사용할 수 있고 Wi-Fi와 Bluetooth를 비롯한 다양한 외부 장치를 연결할 수 있는 GPIO 단자도 갖추고 있다.

장기간 단순한 기능만 수행하는 장치라면 조금 더 단순한 ESP32를 사용하는 방법도 있겠지만, 그건 사용해 본 적이 없어서 일단 익숙한 걸로 해보기로.

Waveshare 8.8inch DSI Wide LCD

Waveshare 8.8inch DSI LCD

디스플레이는 Waveshare 8.8inch DSI LCD 제품을 사용했다.
아무래도 일반적인 화면 비율보다는 와이드 한 디스플레이가 정보를 전달하기에 더 좋을 것 같다는 생각으로 구입했는데, 지금 와서 생각하면 디스플레이가 와이드 한 건 좋은 선택이지만 전체적으로 화면의 크기가 조금 더 컸어도 좋았겠다 싶다.

아이폰 레티나 디스플레이 이후부터는 초고해상도 디스플레이에 눈이 익숙해져 버려서 픽셀이 도드라지는 게 참 거슬리는데, 이 제품은 대각선 길이가 대략 223.5mm밖에 안 되면서 1920 × 480px의 해상도라서 225ppi 정도의 픽셀 밀도를 보여줘 스마트폰처럼 바짝 들여다보는 게 아니라면 픽셀이 거의 눈에 띄지 않는 정도.

방열판과 팬도 설치해야 하고 센서들도 따로 연결해야 하지만 일단 디스플레이만 간단히 연결하고 OS 설치와 업데이트를 마친 다음, 집진 시스템을 위한 화면 제작에 돌입했다.

LCD를 Raspberry Pi 기판에 연결 후 OS를 설치하는 중이다.

평상시에는 공항이나 기차역에서 볼 수 있는 플립 보드(Flip Board) 스타일로 날짜와 시간을 보여준다.
그러다가 집진기가 작동했다는 신호를 받게 되면 멀리서도 바로 알아볼 수 있도록 배경을 진한 오렌지 컬러로 바꾸고,
ATELIER – DUST – COLLECTION – SYSTEM – STATUS 그리고 W O R K S 라고 표시되도록 했다.

집진기가 돌아가지 않을 때 보여지는 플립 클락(Flip Clock) 상태

샌딩이나 자동대패처럼 긴 호흡의 작업을 하게 되면 계속 WORKS만 보고 있는 것도 별 의미가 없으니, 잠시 후에는 집진 상태를 배경색으로 유지하면서 다시 시간을 표시하도록 만들었다.

멀리서 화면의 내용까지 읽지 않아도 일단 전체적인 컬러만 보면 집진기가 작동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도록 한 것.

화면은 HTML과 CSS, JavaScript를 이용해서 만들었고 라즈베리파이 안에서 로컬로 동작하도록 했다.
인터넷에 연결되지 않아도 상관없고, 나중에 글씨나 컬러, 동작 방식을 바꾸고 싶을 때 수정하기도 쉽도록.

플립 넘어가는 디테일한 느낌을 살리고 글씨 배열 등의 미세 수정을 하는 동시에 기능을 추가하는 작업도 병행했다.

24시간 365일 그냥 켜둘 생각이기 때문에, 내가 아뜰리에를 비운 밤 시간 등에는 화면이 꺼져야 할 것 같아 조도 센서(Ambient Light Sensor)를 연결하기로 했다.
작은 사이즈의 BH1750 조도 센서를 활용해 주변 밝기를 측정하고, 일정한 조건에 맞춰 화면을 켜거나 끄도록 하면 될 것 같았다.

목공을 하다 보면 시간이 늦어질 수도 있고, 또 장기적으로 생각하면 아뜰리에에서 목공만 하지는 않을 수도 있으니, 정해진 시간에 무조건 꺼지도록 하는 것보다 실제 공간의 밝기를 기준으로 동작하는 편이 나을 거라고 생각했다.

만들다 보니 이게 또 재미가 붙어서, 화면에 날씨도 표시해 볼까? 공기 질 센서를 달아서 실내 미세먼지도 측정해 볼까? 같은 기능 추가에 대한 여러 유혹에 빠질 뻔했으나, 결국에는 과감히 뿌리치고 오류가 발생할 상황 자체를 줄이는 기본에 충실한 방향으로 마음을 다잡았다.

3D 프린팅을 위한 심플한 디자인의 케이스를 모델링하고 디테일한 실측을 통해 치수를 맞추는 작업

최종적으로는 외부를 월넛 원목으로 씌워 완성할 생각이지만, 일단 부품들을 고정하고 정리해 넣을 케이스가 필요하니 간단히 모델링 후 3D 프린터로 출력을 해보기로.
일단 최대한 기능적인 것만 충족하는 단순한 형태로 구조를 잡았다.
결국에는 열에 강하고 비교적 단단한 PETG로 출력할 생각이지만, 일단 PLA로 몇 차례 뽑아보며 사이즈 보정을 진행했다.

가능하다면 뒤로는 두꺼워지더라도 전면부에서는 디스플레이와 원목 두께만 노출되었으면 하는 생각에 최대한 작게 모아보려고 했는데 아.. 이 전원부가 문제다.
라즈베리파이의 USB-C 전원 단자가 보드 아래쪽을 향하게 자리 잡다 보니 아무리 해봐도 각이 안 나온다.

USB-C 연장 부품 2종 (ㄴ자, ㄷ자 형태)

라즈베리파이 기판에서 USB-C 충전단자 부분을 뜯어내고 납땜질로 위치를 옮길까.. 하고 잠깐 고민했지만.. 그냥 쉽게 가기로 했다.

그래서 급히 구입한 ㄴ자 연장 부품과 ㄷ자 연장 부품.

둘 중에 괜찮은 걸 사용해 보려고 했는데, 이래저래 끼우고 돌리며 연결해 본 결과 ㄴ자 모양의 제품으로 결정.
라즈베리파이 보드를 뒤집고 디스플레이도 뒤집어 세팅한 후, 위쪽 케이스 일부를 뚫어 최대한 전체 볼륨을 키우지 않는 쪽으로 다시 설계했다.

조도 센서 연결을 위한 간단한 납땜질

이제 센서 연결을 위한 납땜질 차례. 오랜만에 납땜질을 하니 이것도 또 재밌다.
요즘은 인두도 USB 방식으로 참 깔끔하게 나오네.
Quecoo T85라는 중국산 USB-C 인두를 구입해서 BH1750 조도 센서를 납땜했고, 다행히 아주아주 잘 동작하는 것을 확인했다.

센서가 주변의 빛을 받아들일 수 있도록 케이스 상부에는 작은 구멍을 하나 뚫었다.
바깥에서는 최대한 눈에 띄지 않는 작은 구멍으로 보이지만 케이스 안쪽 방향으로는 구멍을 넓게 키워서 원뿔형으로 모델링을 수정해서 센서가 주변 빛을 조금 더 잘 받을 수 있도록 했다.

3D 프린팅된 케이스에 모든 케이블과 센서를 끼워 고정하는 모습

써멀 패드를 붙인 팬과 방열판도 보드에 달아주고, 3D 프린터로 임시 출력한 PLA 케이스에 모두 설치해 넣어봤다.
나중에 월넛으로 본 케이스를 제작하게 되면 전원부 걸리는 부분만 라우터로 살짝 깎아내고 끼우는 식으로 마무리하면 꽤 미니멀한 대시보드가 될 것으로 보인다.

전면에서는 거의 디스플레이 면만 보일 수 있도록 케이스 노출을 최소화했다.

이제 가장 중요한 부분이 남았다.
집진기의 실제 작동 상태를 라즈베리파이로 가져오는 일.

처음에는 지하 집진기 쪽 컨택터에 연결된 선에서 신호를 받아 라즈베리파이의 GPIO로 전달하면 되겠거니 생각했다.
3상 380V를 사용하는 집진기의 전기 신호를 라즈베리파이에 직접 연결할 수는 없으니, 전기적으로 회로를 분리하기 위한 PC817 옵토커플러(Optocoupler)도 미리 구입해두었다.
그런데 집진기의 전원부를 실제로 열어보고 iVAC의 MSC까지 연결하려고 하니 이 부분은 처음 생각했던 것보다 조금 더 신중하게 접근해야 할 것 같다.

결국 내가 화면에서 확인하고 싶은 것은 MSC가 집진기에 ON 명령을 보냈다는 사실이 아니다.
한 층 아래에 있는 집진기의 모터가 실제로 돌아가고 있다는 걸 실시간으로 확인하고 싶은 거지.
명령을 보냈는데 집진기가 동작하지 않는다면 오히려 그 상황을 알아내기 위해 만든 대시보드니까.

그래서 집진기인 Laguna C|Flux:3 내부에서 실제 운전 상태일 때만 변화하는 신호나 별도의 보조 접점을 찾고, 그 신호가 어떤 전압과 방식으로 동작하는지를 먼저 확인하기로 했다. PC817을 사용할 수 있을지, 아니면 다른 형태의 절연 회로가 필요할지도 그다음에 결정할 일.

이미 1층과 지하 사이에는 iVAC 제어와 상태 확인을 위해 UTP 케이블을 내려두었으니 배선 자체는 준비되어 있다.
전기 사장님과 C|Flux:3의 실제 회로를 확인하고 나면 그중 남은 선을 이용해서 RUN 상태를 대시보드까지 가져올 계획이다.

그러니까 현재 대시보드는 화면과 조도 센서, 프로그램까지는 거의 만들어졌지만 정작 가장 중요한 집진기의 실제 작동 신호는 아직 연결되지 않은 상태. 여기까지는 괜히 서두르지 않는 걸로.

최종 완성된 디지털 시계의 화면

아직 집진기와 연결되어 있지는 않지만 케이스를 닫으면 그래도 굉장히 깔끔한 모습으로 정리된다.
최종에는 연도 표시 크기를 줄이고 네 자리를 모두 표시하게 해 확실한 구분을 해주었고, 그 아래로 아뜰리에 로고를 삽입했다.
이 정도면 집진기 연결 없이 탁상용 시계의 역할만으로도 충분히 훌륭하게 활용이 되겠다.

테스트를 위해 화면을 터치하면 집진기가 가동된 상황을 연출할 수 있도록 했다.

테스트를 위해 화면을 터치하면 집진기가 켜진 것처럼 보이도록 만들어두었는데, 오렌지 컬러 시계 자체로도 나름 멋스럽네.
전원이 연결되면 자동으로 대시보드 화면을 띄우도록 세팅해놓은 상태라 나중에는 별도의 조작 없이 전원만 들어오면 알아서 실행될 예정.

라즈베리파이의 저장 장치는 현재 microSD 카드를 사용하고 있지만, 장기간 상시 운용하는 장치라는 점을 고려해 나중에는 작은 NVMe SSD로 변경하는 것도 고민 중이다. microSD만으로도 충분히 사용할 수는 있지만 상시 운용하는 장치라면 저장 장치의 내구성과 복구 편의성도 생각해 볼 필요가 있으니까.

누군가 보기에는 굳이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싶은 장치일 수도 있고,
실제로 집진기에 연결된 표시등 하나만 달아놔도 목적에는 부합한다.

하지만 목적보다 더 재미있는 게 목적까지 가는 과정이랄까.
여행도 보통은 여행 자체보다 가기 전에 꿈에 부풀어 계획하고 짐 싸고 하는 게 더 두근거리는 것처럼.
어떤 기능이 필요하고, 그 기능이 공간 안에서 어떻게 보여지고, 실제로 사용할 때 어떤 느낌이어야 하는지를 하나씩 정하고 정리해 가는 과정 자체가 너무너무 신나고 재미있다.

게다가 처음에는 단순히 집진기가 켜졌다는 것을 알려주는 표시등 하나에서 시작했는데,
라즈베리파이가 붙고,
화면이 붙고,
시계가 생기고,
조도 센서가 붙고,
케이스를 만들고,
이제는 집진기의 실제 RUN 상태까지 정확히 확인하겠다고 일을 벌이고 있다.
나중에 원목 케이스까지 제작하면 정말 오버에 오버를 더한 쓸데없는 짓이 될 수도 있겠지만,

솔직히 아뜰리에, 이런 거 하려고 만든 공간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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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진 배관의 규격과 경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