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UILD PROCESS
모델링부터 실제 제작까지
설계를 혼자 했다고 해서 제작까지 혼자 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내가 구조를 연구하고 디테일을 잡아 SketchUp으로 모델링한 뒤 공유하면, WOOS는 그것을 실제로 만들 수 있는지 검증하고 제작을 준비했다.
이 워크벤치는 개인 프로젝트이지만 혼자 만든 물건은 아니다.
워크벤치의 전체 구조는 SketchUp에서 설계했다. 프레임의 간격, 판재와 서랍의 위치, 캐치 트레이와 하부 공간을 여러 각도에서 확인했다. 화면 안에서는 모든 부품이 정확한 좌표에 놓이고 간섭이 생기면 곧바로 수정할 수 있었다.
하지만 모델이 실제 제작 순서나 연결 구조까지 알려주는 것은 아니었다.
그래서 독일 item24의 온라인 엔지니어링 툴에서 연결 구조에 대한 정보를 얻었다. 웹에서 프로파일의 종류와 연결 방식을 설정해 여러 방식으로 조립해볼 수 있는데, 이 결과를 가지고 주문까지 한 번에 할 수 있다면 참 좋겠지만 국내에서는 불가능한 일. 일단 그 안에서 여러 구조를 만들어 보며 스스로 이해도를 높인 뒤 다시 SketchUp으로 돌아와 정리하곤 했다.

어떤 부품을 먼저 가공해야 하는지, 조립 중 저 위치까지 공구가 들어가 체결할 수 있는지, 판재가 실제로 끼워지려면 어느 정도의 오차 범위를 두고 가공해야 하는지 같은 문제는 역시 실전 경험이 필요했다.
그 부분을 WOOS 와 함께 풀었다.
WOOS는 자작나무 합판 가구와 벙커침대를 주로 만드는 가구 제작업체다. WOOS 는 꽤 오랫동안 친분을 쌓아온 분인데 까다로운 내 요구에도 늘 차분하고 꼼꼼하게 결과를 만들어주셨다. 게다가 나처럼 새로운 일을 시작하는 데 관심이 많은 편이라, 지금처럼 내가 이상한 시도를 할 때도 적극적으로 나서주신다. 함께 프로젝트를 진행하기에 더할 나위 없이 잘 맞는 협업이었다.
처음 WOOS 를 알게 된 것은 2017년의 새집 프로젝트였다. 새집을 원목으로 만들고 안에 Google Nest 카메라를 설치해 새가 집을 짓고 사는 모습을 실시간으로 구경하겠다는 나의 이상한(?) 계획에서 시작됐다. 물론 과정은 엄청 재미있었고, 실제로 박새가 알을 낳고 생활하는 모습을 흥미롭게 지켜보는 새로운 경험도 됐다.

어쨌든 그때와 마찬가지로 나는 사용 방식과 외형, 전체 구조를 설계하고 자료를 조사했다. WOOS 는 설계에 대한 확인이 끝난 뒤 재료 준비와 가공, 실제 조립이 가능한지 검증하는 일에 집중했다.
역할을 단순히 ‘설계자와 외주 제작자’로 나누기는 어렵다. 사용 방식과 구조, 디테일은 내가 설계했고, WOOS 는 그 설계를 실제 부품과 가공 순서로 옮겨 제작하고 검증하는 데 집중했다. WOOS 도 이 설계와 시도를 마음에 들어 해 자신의 작업대까지 함께 만들기로 했다. 그렇게 같은 설계를 바탕으로 두 대의 워크벤치가 제작되었다.
실제 제작은 알루미늄 프로파일의 가공 순서 때문에 특히 철저한 계획이 필요했다.
프로파일은 기본적인 길이 절단과 체결을 위한 홀 가공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측면에 클램프를 끼울 수 있도록 라우터로 프로파일의 홈을 넓히는 가공도 추가했고, 알루미늄이 잘린 단면은 굉장히 날카로워 손이 다치지 않도록 엣지를 갈아내는 작업도 필요했다.
이 모든 가공을 마친 뒤에야 별도의 업체로 보내 블랙 아노다이징 과정을 진행할 수 있었다. 마감 후 빠진 공정을 발견해 추가로 가공하면 그 부분에서 다시 은색 단면이 드러나기 때문에 조립 전에 체결 위치와 필요한 가공을 여러 번 대조하고, 확인하고 또 확인해야 했다.

판재 가공에서는 상판의 평면과 MFT 홀의 정확도가 중요했다. 내가 전달한 설계에 맞춰 대형 CNC로 타공했고, 정밀도를 유지하기 위해 새 날을 여러 개 준비해 교체하며 작업을 진행했다.
상판 외에도 서랍 러너가 달리는 세로 판재는 40×40mm 알루미늄 프로파일 뒤쪽으로 단차 없이 마감해 잘 보이지 않는 면까지 미완성처럼 보이지 않도록 했다. 가운데 기준이 되는 합판 양쪽에 9mm HPL 합판을 대어 바깥쪽에서는 짙은 회색 면만 보이도록 했고, 상하좌우 모든 프로파일의 홈에 끼워 고정할 수 있도록 추가 가공해 장착했다.
그러다 보니 전체 워크벤치에 들어간 합판의 양만으로도 무게가 상당할 수밖에 없었다. 거기에 중량 알루미늄 프로파일까지.
Penn Elcom 러너가 도착했을 때부터 예상한 일이지만 레일도 생각보다 훨씬 무거웠다. 워크벤치 한 대에는 시스테이너 트레이 15개와 측면의 일반 서랍 5개, 모두 20개의 서랍이 들어간다. 각 서랍에 러너 한 쌍이 필요하니 워크벤치 한 대 기준으로는 20쌍, 개별 러너로 세면 40개다.
이 가운데 A면의 긴 트레이 9개에 Penn Elcom 700mm 러너 아홉 쌍이 사용되고, 나머지 트레이와 일반 서랍에는 350mm 또는 400mm Häfele 러너가 들어간다.

트레이에 시스테이너를 그냥 올리면 여닫는 동안 움직이거나 벽과 간섭이 생길 수 있다. 그래서 바닥면에는 시스테이너 발 크기에 맞춰 홈을 CNC로 가공했고, 그 가공면도 별도로 도장해 마무리했다.
처음 설계한 폭으로는 앞뒤로 올린 시스테이너 두 개를 트레이 위에서 원활하게 여닫기 어려워 작업대 전체 폭을 늘리기도 했다. 홈이 발을 안정적으로 잡을 만큼의 깊이를 가져야 하고 측면에는 무거운 러너까지 체결되어야 하니, 결국 꽤 두께가 있는 트레이가 완성됐다. 여기에 시스테이너와 공구까지 올라가면 실제로 움직이는 질량도 상당하다.

무게도 무게지만 프레임 체결과 서랍 정렬은 단순히 치수만 맞추는 일이 아니었다. 트레이 앞쪽 손잡이의 높이, 받침대의 두께, 측면 러너와 받침대의 연결 구조까지 언뜻 간단해 보이지만 하나만 어긋나도 세상 허접해 보일 수 있는 부분이라 드러나지 않는 숨은 디테일이 필요했다.
상판 아래에는 양쪽에 각각 두 개씩 콘센트를 두었다. 워크벤치가 놓일 자리에는 큰 전력을 사용할 수 있도록 별도의 바닥형 콘센트를 미리 설치해 두었고, 워크벤치의 내부 배선은 동양 4sq×3C 연질 무광 고용량 케이블로 연결했다.
워크벤치가 놓일 아뜰리에 전체에 독일 JUNG의 스위치와 콘센트를 사용했기 때문에 워크벤치에도 같은 LS 990 시리즈의 유럽식 정방형 콘센트를 선택했다. 벽체용과는 다른 JUNG 전용 오렌지색 플라스틱 매립박스를 사용했고, 먼지가 쉽게 들어갈 수 있는 위치인 만큼 사용하지 않을 때 커버로 덮을 수 있는 제품을 설치했다.

조립이 진행될수록 모델 안에서 결정했던 것들이 실제 외형을 만들기 시작했다. 검게 마감된 프로파일의 단면, 상판 홀의 어두운 가장자리, 캐치 트레이가 열린 방향, 손잡이와 레일의 위치가 하나씩 연결되었다.
완성에 가까워졌을 때 가장 먼저 든 생각은 기능이나 디자인에 대한 감상보다는 알 수 없는 묘한 기분이었다. 너무 오랫동안 모니터 안의 모델로만 봐온 모습이 실제 공간에 서 있었기 때문이다. 동시에 화면에서는 느낄 수 없었던 무게감과 견고함도 그제야 확인할 수 있었다.

아뜰리에로 옮겨 설치하는 작업은 이틀에 걸쳐 진행했다. 그렇다고 MFT 워크벤치 한 대를 설치하는 데 이틀이 꼬박 필요했던 것은 아니다. 오전에는 목공방 수업이 잡혀 있어 오후부터 작업을 시작했고, 다른 목공 장비를 올려둘 소형 워크벤치도 함께 설치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이틀로 나뉘었다. 특별한 사건이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여러 작업대가 한꺼번에 자리를 잡으면서 그제야 아뜰리에의 작업 공간도 조금씩 실제 모습에 가까워졌다.
MAKING SEQUENCE
- 적용할 기능과 시스테이너 수납 계획
- Sketch Up 프레임 및 수납 모델링
- WOOS와 제작성 검토
- 알루미늄 프로파일, 손잡이, 마감 채널 절단 및 가공
- 가공 완료 부품 블랙 아노다이징
- HPL 판재 및 MFT 상판 가공
- 프레임 가조립 및 구조 재검토 후 디테일한 수치 검증
- 측판 러너 설치
- 캐치 트레이, 손잡이와 전원부 설치
- 상판, 캐스터 및 마감 조립
- 마무리 구조 완전 고정 및 서랍 조립
- 정렬, 검수 및 클리닝
완성된 워크벤치와 첫 번째 모듈